1777년 홍이팔(洪履八) 교첩(敎牒)

ㆍ자료UCI: KNU+GWKSMC+KSM-XA.1777.1111-20170501.201600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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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교령류-고신 | 정치/행정-임면-고신
· 작성주체 발급 : 정조 이산(李祘)
수취 : 홍이팔(洪履八)
· 작성지역 한성부
· 작성시기 乾隆四十二年(1777)
· 형태사항 53.8 X 72.3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1 (적색, 정방형, 8.0*8.0, 吏曹之印)
· 원소장처 춘천 남양홍씨
· 현소장처 춘천 남양홍씨

연결자료

안내정보

1777년(정조 1)에 이조(吏曹)에서 왕명을 받들어 학생(學生) 홍이팔(洪履八)장사랑(將仕郞)으로 임명한 고신(告身)이다.
홍이팔이 임명받은 장사랑은 문관 정9품 하계의 품계이다. 문서의 발급일 좌측에는 작은 글씨로 임명사유가 부(父) 장악정(掌樂正) 홍언철(洪彦喆) 전임평안도도사(前任平安道都事) 시(時) 팔별대가(八別 代加)라 기재되어 있는데, 이는 부친 장악정 홍언철평안도도사로 재임하던 시기인 정(丁)자가 들어간 해에 8월에 있던 일로 특별히 대가(代加)한다는 뜻이다.
정조의 명을 받은 날짜와 문서의 발급일자 모두 건륭(乾隆) 42년으로 월(月)과 일(日)은 기재하지 않았다.
문서의 뒷면에는 '이리(吏吏) 김창석(金昌碩)'이라 기재되어 있다.

상세정보

1777년(정조 1)에 吏曹에서 왕명을 받들어 學生 洪履八將仕郞으로 임명한 告身이다.
고신은 임금이 신하에게 관직을 내리는 임명장으로 4품 이상 고신과 5품 이하 고신으로 구분된다. 4품 이하 고신은 임금이 직접 내리는 임명장이고, 5품 이하 고신은 臺諫의 書經을 거쳐 이조나 병조에서 내리는 임명장이다. 홍이팔이 임명받은 장사랑은 문관 정9품 하계의 품계이므로 본 문서는 5품 이하 고신에 해당한다.
5품 이하 고신의 형식은 경국대전 예전에 '文武官五品以下告身式'에 수록되어 있다. 서두에 '某曹某年某月某日奉敎'를 쓰고, 이어서 '具官某爲某階某職者'를 기재한다. 행을 바꾸어 발행일자를 쓰는데 年과 月사이에 발급관서의 官司印을 찍는다. 발급일자 다음에 기록된 判書, 參判, 正郞, 佐郞의 기재 부분은 문서의 발급에 관여한 관원이 서명을 하는 부분이다. 서명을 할 때에는 '臣'이라는 글자를 본문보다 작게 쓰고, 담당자를 기술한다. 문서의 발급사유가 있을 경우애는 문관은 발급일자의 좌측에, 무관은 우측에 기재한다.
이 문서 역시 이러한 형식에 따라 작성되었는데, 정조의 명을 받은 날짜 및 문서의 발급일자는 '乾隆四十二年'으로 月과 日은 기재되지 않았다. 문서의 발급일 좌측에는 작은 글씨로 임명사유를 밝히고 있는데 '父掌樂正洪彦喆前任平安道都事八別代加'라고 기재되어 있다. 이는 부친 掌樂正 홍언철평안도도사로 재임하던 시기에 ''자가 들어간 해 8월에 있던 일로 특별히 代加한다는 뜻이다. 이 문서가 발급된 해가 정유년이므로 八은 1777년 8월을 가리킨다. 정조실록에 따르면 이 시기에 숙종의 탄신일을 기념하여 璿源殿에서 酌獻禮를 親行하는 경사가 있었는데, 이 때문에 특별히 대가한 것으로 짐작된다.
문서의 발급에는 吏曹參議 李義翊이 참여하였다.
문서의 뒷면에는 '吏吏金昌碩'이라 기재되어 있어 문서의 작성자를 확인할 수 있다.
홍이팔과 관련한 문서는 춘천 남양홍씨 가문에 다수 현전하고 있다. 이 문서들을 통해 홍이팔임신(1752)생으로 본관은 남양이고, 礪山宋氏와 혼인하였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유지영, 조선시대 임명관련 교지의 문서형식, 古文書硏究 30, 한국고문서학회, 2007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鄭求福, 고문서 용어풀이 고신, 古文書硏究 22, 한국고문서학회, 2003
집필자 : 황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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