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6년 홍훤(洪藼) 준호구(準戶口)

ㆍ자료UCI: KNU+GWKSMC+KSM-XD.1666.1111-20170501.2016000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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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한성부(漢城府)
수취 : 홍훤(洪藼)
· 작성지역 한성부
· 작성시기 康熙五年(1666)
· 형태사항 96.5 X 66.3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5 (적색, 정방형, 7.0*7.0, 漢城府印)
1 (흑색, 장방형, 14.5*5.8, 周挾壹字改印)
· 원소장처 춘천 남양홍씨
· 현소장처 춘천 남양홍씨

연결자료

안내정보

1666년(현종 7) 한성부(漢城府)에서 남부(南部) 낙선방(樂善坊) 왜관동계(倭館洞契)에 거주하는 통훈대부(通訓大夫) 호조좌랑(戶曹佐郎) 홍훤(洪藼)에게 발급해 준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홍훤신유(1621)생으로 당시 나이는 46세이고, 본관은 남양이다. 가족은 처 숙인(淑人) 이씨(李氏), 사위 윤적경(尹積慶) 내외, 외손자 윤만일(尹萬一)이 있다.

상세정보

1666년(현종 7) 漢城府에서 通訓大夫 戶曹佐郎 洪藼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주호 홍훤의 당시 나이는 46세이고, 본관은 남양이다. 주호의 거주지는 漢城府 南部 樂善坊 倭館洞契이며, 사망한 判書 李安訥家를 借入한 前 佐郞 洪茂의 집에서 夾戶의 형태로 거주한다고 기재되어 있다. 연관문서에 의하면 홍훤신유(1621)생이다.
협호의 의미에 대해서는 아직 논의가 진행 중이다. 최근 연구에서는 농촌협호와 도시협호를 구분하는데, 농촌협호의 다수는 주호의 예속노동력이나 종속소작인을 형성하지만 도시협호의 경우는 농업 외에 상공업, 雇役 등에 종사하는 임노동자가 많거나 혹은 관리, 과거 준비 등 특수목적을 위해 上京하여 단지 주호의 가옥 일부를 임차하고 있는 자들도 존재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홍훤의 경우는 후자에 해당하며 특수목적을 위해 상경하여 단지 주호의 가옥 일부를 임차한 경우로 생각된다.
홍훤의 사조사항을 보면 부친은 從仕郞 洪振湖이고, 조부는 贈通政大夫 承政院左承旨 兼經筵參贊官 宣敎郞 洪琡이며, 증조부는 贈通訓大夫 弘文館直提學 知製敎 兼經筵侍講官 春秋館編修官 行通訓大夫 豊基郡守 安東鎭管兵馬同僉節制使 兼春秋館編修官 洪翼俊이다. 외조부는 通德郞 金添命으로 본관은 선산이다.
가족은 처, 사위 내외, 외손자가 있다. 가족을 기재할 때 나이는 밝히고 있지만 생년간지는 생략되어 있는데, 나이를 토대로 생년을 추정할 수 있다. 처는 淑人 李氏로 당시 나이는 49세이고, 본관은 경주이며, 생년은 무오년(1618)이다. 처의 부친은 成均進士 李慶集이고, 조부는 通訓大夫 行豊儲倉奉事 李溧이며, 증조부는 嘉善大夫 吏曹參判 兼同知經筵事 世子右副賓客 五衛都摠府副摠管 李廷馨이다. 외조부는 宣務郞 南斗一로 본관은 의령이다.
사위는 유학 尹積慶으로 나이는 27세이고, 본관은 파평이다. 윤적경의 생년은 경진년(1640)으로 추정된다. 딸 孺人 洪氏의 나이는 25세이고, 생년은 임오년(1641)으로 추정된다. 외손자 尹萬一의 나이는 6세이고, 생년은 신축년(1661)으로 추정된다.
노비는 率奴婢 8口와 수원에 사는 外居奴婢 3구가 있는데, 문서에는 노비의 부모도 함께 기재하였다.
춘천 남양홍씨 가문에 전해진 호구류 문서 중에서는 1666년의 호적단자와 준호구가 가장 빠른 시기에 작성된 문서이다. 호구단자는 관에서 3년마다 호적장적을 만들 때, 주호가 자신의 호의 상황을 적어서 官에 제출한 문서이고, 준호구는 관에서 호적장적에 의거하여 개인의 호적사항을 증명해 준 문서이다. 1666년의 준호구는 병오식년(1666)에 작성한 호적대장을 기준으로 작성하였고, 그 호적대장의 기초자료가 호적단자이므로 같은 해에 작성되었다 해도 준호구보다 빠른 시기에 작성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준호구에는 堂上, 郎廳, 主簿의 서압이 있고, 5개의 官印이 찍혀 있는데, 문서의 말미에 찍혀진 관인 위에는 周挾壹字改印이 날인되어 있어 1개의 글자를 수정한 것을 알리고 있다. 수정된 글자는 문서의 우측에서 7째줄 관인이 찍힌 부분에 있으며, 수정한 글자의 우측에 적색의 'o'으로 표시하였다.
문서의 보존상태는 비교적 상호하다. 이 문서는 춘천 남양홍씨 가문에서 세로로 4번, 가로로 4번 접어서 보관하여 전해졌으며 접혀진 모서리마다 약간의 오염이 있다.
홍훤의 거주지인 한성부 남부 낙선방은 현재 서울특별시 중구 인현동 2가 부근에 해당한다.
홍훤과 관련된 호구자료는 1666년부터 1690년까지 8통이 현전하는데, 이 문서들을 보면 홍훤1672년까지는 한성부에 거주하였고, 이후에는 춘천에서 거주한 것을 알 수 있다.
홍훤과 관련해서는 호구문서 외에도 24건의 교령류 문서가 전해진다. 연관문서를 통해 홍훤1659년 진사에 합격하여 39세 때부터 벼슬살이를 시작한 것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종8품 平市署奉事부터 시작하여 종7품 宗簿寺直長, 정6품 戶曹佐郎, 종5품 工曹正郎, 정5품 刑曹正郎을 거쳤고, 약 20년간의 관직생활을 하였다. 관직에서 물러난 1675년 전후에 춘천으로 옮겨와 생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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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 황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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