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9년 홍훤(洪藼) 준호구(準戶口)

ㆍ자료UCI: KNU+GWKSMC+KSM-XD.1669.1111-20170501.201600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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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한성부(漢城府)
수취 : 홍훤(洪藼)
· 작성지역 한성부
· 작성시기 康熙八年(1669)
· 형태사항 102.5 X 66.8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3 (적색, 정방형, 8.0*8.0, 漢城府印)
1 (흑색, 장방형, 14.2*5.5, 周挾玖字改印)
· 원소장처 춘천 남양홍씨
· 현소장처 춘천 남양홍씨

연결자료

안내정보

1669년(현종 10) 한성부(漢城府)에서 통훈대부(通訓大夫) 전호조좌랑(前戶曹佐郎) 홍훤(洪藼)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홍훤신유(1621)생으로 당시 나이는 49세이고, 본관은 남양이다. 한성부 중부(中部) 경행방(慶幸坊) 사거리계(四巨里契)에서 처 숙인(淑人) 경주이씨(慶州李氏), 사위 유학(幼學) 윤적경(尹積慶) 내외 그리고 외손자 윤만일(尹萬一)과 함께 거주하였다.

상세정보

1669년(현종 10) 漢城府에서 通訓大夫 前戶曹佐郎 洪藼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주호 홍훤의 당시 나이는 49세이고, 본관은 남양이다. 주호의 거주지는 漢城府 中部 慶幸坊 四巨里契이며, 前司果 羅舜臣의 집을 매입하여 거주한다고 기재되어 있다. 연관문서에 의하면 홍훤신유(1621)생이다.
홍훤의 사조사항을 보면 부친은 從仕郞 洪振湖이고, 조부는 贈通政大夫 承政院左承旨 兼經筵參贊官 宣敎郞 洪琡이며, 증조부는 贈通訓大夫 弘文館直提學 知製敎 兼經筵侍講官 春秋館編修官 行通訓大夫 豊基郡守 安東鎭管兵馬同僉節制使 兼春秋館編修官 洪翼俊이다. 외조부는 通德郞 金添命으로 본관은 선산이다.
가족은 처, 사위 내외, 외손자가 있다. 가족을 기재할 때 나이는 밝히고 있지만 생년간지는 생략되어 있는데, 나이를 토대로 생년을 추정할 수 있다. 처는 淑人 李氏로 당시 나이는 52세이고, 본관은 경주이다. 생년은 무오년(1618)으로 추정된다. 처의 사조를 살펴보면 부친은 成均進士 李慶集이고, 조부는 通訓大夫 行豊儲倉奉事 李溧이며, 증조부는 嘉善大夫 吏曹參判 兼同知經筵事 世子右副賓客 五衛都摠府副摠管 李廷馨이다. 외조부는 宣務郞 南斗一로 본관은 의령이다.
사위는 幼學 尹積慶으로 나이는 30세이고, 본관은 파평이다. 생년은 경진년(1640)으로 추정된다. 딸은 孺人 洪氏로 나이는 28세이며, 생년은 임오년(1641)으로 추정된다. 외손자는 尹萬一이고, 나이는 9세이며, 생년은 신축년(1661)으로 추정된다.
노비는 率奴婢 6口와 수원에 사는 外居奴婢 2구, 그리고 도망노비가 3구 있으며, 문서에는 노비의 부모도 함께 기재하였다.
연관문서 중에는 1666년에 작성된 호구단자와 준호구가 현전하여 당시 홍훤의 거주지가 漢城府 南部 樂善坊 倭館洞契에서 中部 慶幸坊 四巨里契로 옮겨진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홍훤의 부친 홍진호1669년 춘천부로부터 발급받은 준호구에 한성부에서 거주하는 홍훤과 가족원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어 홍훤을 포함한 그의 가족은 같은 해에 발급된 한성부 준호구와 춘천부 준호구에 동시에 이름이 올라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준호구에는 堂上, 郎廳, 主簿의 서압이 있고, 3개의 官印이 찍혀 있다. 문서의 말미에 찍혀진 관인 위에는 周挾玖字改印이 날인되어 있어 9개의 글자를 수정하였음을 알 수 있다. 문서를 살펴보면 문서의 우측에서 5번째 행 '善大夫吏曹' 5자와 마지막 행 '丙午戶口' 4자를 수정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문서의 보존상태는 비교적 양호하나 문서의 중앙부에 짙은 오염이 있으며, 세로로 4번, 가로로 4번 접어서 보관한 흔적이 남아있다.
홍훤의 거주지로 기록된 한성부 중부 경행방한성부 중부 8방의 하나로 현재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경운동 부근에 해당한다. 경운동경행방의 '慶'자와 그 부근에 있던 雲峴宮의 '雲'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홍훤과 관련한 연관문서로 호구문서 외에 24건의 교령류 문서가 있다. 연관문서를 통해 홍훤1659년 진사에 합격하여 39세 때부터 벼슬살이를 시작한 것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종8품 平市署奉事부터 시작하여 종7품 宗簿寺直長, 정6품 戶曹佐郎, 종5품 工曹正郎, 정5품 刑曹正郎을 거치면서 약 20년간의 관직생활을 하였고, 관직에서 물러난 1675년 전후에 춘천으로 옮겨와 생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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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 황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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