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9년 홍진호(洪振湖) 준호구(準戶口)

ㆍ자료UCI: KNU+GWKSMC+KSM-XD.1669.4211-20170501.201600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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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춘천부(春川府)
수취 : 홍진호(洪振湖)
· 작성지역 춘천부
· 작성시기 康熙八年(1669)
· 형태사항 114.5 X 76.7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5 (적색, 정방형, 7.0*7.0, 春川府印)
1 (흑색, 장방형, 14.7*5.4, 周挾無改印)
· 원소장처 춘천 남양홍씨
· 현소장처 춘천 남양홍씨

연결자료

안내정보

이 문서는 1669년(현종 10) 춘천부(春川府)에서 동산외면(東山外面) 만의동리(萬宜洞里)에 거주한 종사랑(從仕郞) 홍진호(洪振湖)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주호 홍진호의 본관은 남양이고, 당시 나이는 70세로 경자(1600)생이다. 가족은 처 선산김씨(善山金氏)와 아들 4형제 내외, 2명의 사위 내외, 손자사위 내외 그리고 그들의 자녀인 7명의 손자와 2명의 증손자까지 모두 24명이 기재되어 있다.

상세정보

이 문서는 1669년(현종 10) 춘천부에서 洪振湖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이 준호구는 己酉式年(1669)에 작성한 호적대장을 토대로 작성된 것이다. 주호 從仕郞 홍진호는 당시 70세로 경자(1600)생이고, 거주지는 春川府 東山外面 萬宜洞里이다. 홍진호의 사조는 부친 承政院左承旨 洪琡, 조부 弘文館直提學 洪翼俊, 증조부 敦寧府僉正 洪靜, 외조부 學生 柳永達이다. 외조부 柳永達의 본관은 전주이다.
처는 善山金氏춘천의 세거사족인 通德郞 金添命의 딸이다. 선산김씨의 조부는 龍驤衛副護軍 金繼賀이고, 증조부는 忠佐衛司直 金世知이다. 외조부는 본관이 풍양通訓大夫 行求禮縣監 順天鎭管兵馬同僉節制都尉 趙思謙이다.
가족은 처 선산김씨 외에 아들 4형제 내외, 2명의 사위 내외, 손자사위 내외 그리고 그들의 자녀인 7명의 손자와 2명의 증손자까지 모두 24명이 기재되어 있다. 가족의 기재 순서는 출생순서 순으로 남녀를 구분하지 않았고, 다만 손자의 경우 부모의 기재사항 아래에 기재하였다.
문서에 기재된 순서대로 가족의 인적사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아들 通訓大夫 前行戶曹佐郞 洪藼은 당시 나이가 49세이고, 처 淑人 李氏는 52세로 본관은 경주이다.
손자사위 幼學 尹積慶 일가도 함께 살았는데, 윤적경홍훤의 사위로 당시 30세이고, 본관은 파평이다. 처는 孺人 洪氏로 28세이고, 9세와 3세인 아들 尹萬一尹時一을 두었다. 윤만일윤시일은 주호 홍진호의 外曾孫임에도 曾孫이라 기재하였다.
사위 生員 趙橒은 49세로 본관은 평양이다. 처는 유인 홍씨로 47세이며, 2명의 아들을 두었다. 첫째 아들 趙爲周는 나이가 27세이고, 둘째 아들 趙爲冕은 22세이다. 조위주조위만은 外孫이라고 기재하였다.
둘째 아들 유학 洪蘊은 45세이고, 처는 廣州安氏홍온과 동갑이며 자녀는 기재하지 않았다.
셋째 아들 유학 洪葕은 43세이고, 처는 安東權氏로 38세이다. 슬하에 洪至賤, 洪又賤, 洪益賤 세 아들을 두었으며, 이들은 각각 9세, 6세, 4세이다.
넷째 아들 유학 洪菦은 34세이고, 처 全州李氏는 31세이다. 洪台相, 洪台鼎 두 아들을 두었는데, 이들은 각각 9세와 6세이다.
사위 유학 李志相은 31세로 본관은 경주이다. 처는 유인 홍씨로 30세이고, 자녀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이렇듯 문서에 기재된 내용에 의하면 홍진호는 슬하에 4명의 아들과 2명의 딸을 두었는데, 남양홍씨 족보에 따르면 넷째 아들은 홍근이 아니라 洪藎으로 1669년에 사망하였다. 이 준호구도 1669년에 발급되었지만 넷째 아들 홍신이 누락된 것으로 보아 홍신은 이 문서를 발급받기 전에 사망한 것으로 짐작된다.
이 중 장남 홍훤1666년1669년에 分戶한 상태로 한성부로부터 준호구를 발급받은 사실이 확인되어 같은 시기에 춘천부와 한성부에서 동시에 준호구를 발급받은 점이 주목된다. 그리고 홍진호가 사망한 이후의 준호구는 홍훤을 주호로 기재하였으며, 모두 춘천부에서 발급되었다.
이 준호구의 기재양식을 일반적인 준호구들과 비교할 때 가장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노비를 기록한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준호구를 작성할 때 노비와 관련된 내용은 가족구성에 관한 기재가 끝난 후에 각각의 率奴婢秩, 外居奴婢秩, 逃亡奴婢秩을 순차적으로 기재한다. 그런데 이 문서에는 주호 홍진호와 그의 사조 및 처의 사조를 기록한 후 솔노비질, 외거노비질, 도망노비를 기재하였다. 그리고 아들 홍훤 내외를 기록한 후 솔노비질, 외거노비질, 도망노비를 기재하였다. 그 다음 다시 손자사위 윤적경 내외를 기록한 후 솔노비질, 외거노비질, 도망노비를 기재하였다. 이처럼 주호, 아들, 손자사위, 사위 등을 기재하면서 각각의 소유 노비를 구분하였기 때문에 마치 재산상속문서인 분재기와 흡사한 양상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적이다.
이 문서는 남양홍씨 가문 익산군파 후손이 춘천 지역과 연결되는 가장 빠른 시기의 문서라는 점에서 해당 가문이 춘천으로 이거한 시점을 추정하는데 중요한 사료가 된다. 그리고 특정 시기 부친 홍진호와 아들 홍훤이 각각 다른 지역에서 주호가 되었다는 점에서 당시의 分戶와 合戶에 관한 관행을 살펴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이 문서를 통해 지역 및 가문별 호구문서의 작성방식이 일정한 체계 속에서도 개별적인 특징을 보인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해당 문서의 다양한 기재양식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문서의 보존상태는 비교적 양호하다. 이 문서는 춘천 남양홍씨 가문에서 세로로 6번, 가로로 5번 접어서 보관하여 전해졌으며 접혀진 모서리마다 약간의 오염이 있다.
주호의 거주지로 기록된 춘천부 동산외면 만의동리는 지금의 춘천시 동면 만천리 일대로 현재까지 후손들이 세거하고 있으며 종가를 포함하여 5~6호가 남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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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 황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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