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2년 조운(趙橒) 준호구(準戶口)

ㆍ자료UCI: KNU+GWKSMC+KSM-XD.1672.4211-20170501.2016000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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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춘천부(春川府)
수취 : 조운(趙橒)
· 작성지역 춘천부
· 작성시기 康熙十一年(1672)
· 형태사항 109.1 X 65.0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3 (적색, 정방형, 8.0*8.0, 春川府印)
1 (흑색, 장방형, 14.9*5.5, 周挾無改印)
· 원소장처 춘천 남양홍씨
· 현소장처 춘천 남양홍씨

연결자료

안내정보

1672년(현종 13) 춘천부(春川府)에서 생원(生員) 조운(趙橒)에게 발급해 준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주호 조운은 나이가 52세이고, 본관은 평양이다. 생년간지는 기재되어 있지 않지만 나이를 통해 신유(1621)생임을 알 수 있다. 조운동산외면(東山外面) 만의동리(萬冝洞里)에 있는 통훈대부(通訓大夫) 전공조정랑(前工曹正郞) 홍훤(洪藼)의 집에서 협호(挾戶)의 형태로 거주하였다.
조운의 가족으로는 처 유인(孺人) 홍씨(洪氏), 첫째 아들 충의(忠義) 조위도(趙爲道), 둘째 아들 조위정(趙爲正), 사위 유학(幼學) 최진희(崔晋禧), 딸 유인(孺人) 조씨(趙氏)가 함께 기재되어 있다.

상세정보

1672년(현종 13) 임자년春川府에서 성적한 호구장적을 참고하여 生員 趙橒에게 발급해 준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주호 조운은 나이가 52세이고, 본관은 평양이다. 생년간지는 기재되어 있지 않지만 나이를 통해 신유(1621)생임을 알 수 있다. 조운東山外面 萬冝洞里에 있는 通訓大夫 前工曹正郞 洪藼의 집에서 挾戶의 형태로 거주하며, 처 孺人 洪氏, 첫째 아들 忠義 趙爲道, 둘째 아들 趙爲正, 사위 幼學 崔晋禧, 딸 孺人 趙氏와 함께 살았다.
협호의 의미에 대해서는 아직 논의가 진행 중에 있는데, 조운홍훤과 처남과 매부 사이인 점으로 보아 혈연관계에 의해 홍훤의 가옥 일부를 임차한 협호로 짐작된다. 연관문서에 따르면 홍훤1672년 당시 관직생활을 위해 상경한 상태였으며, 준호구도 한성부에서 발급받았다.
주호의 사조사항을 보면 부친은 朝散大夫 行禮賓寺奉事 趙▣…▣이고, 조부는 ▣…▣寺直長 趙鋼이다. 문서의 탈락으로 인해 부친은 이름을 확인할 수 없고, 조부는 직역을 확인할 수 없다. 증조부는 禦侮將軍 行忠佐衛副護軍 趙繼興이고, 외조부는 從仕郞 崔基로 본관은 전주이다.
유인 홍씨는 50세이고, 본관은 남양이다. 처의 부친은 從仕郞 洪振湖이고, 조부는 贈通政大夫 承政院左承旨 兼經筵參贊官 宣敎郞 洪琡이며, 증조부는 贈通訓大夫 弘文館直提學 知製敎 兼經筵侍講官 春秋館編脩官 行通訓大夫 豊基郡守 安東鎭管兵馬同僉節制使 兼春秋館編脩官 洪翼俊이다. 외조부는 通德郞 金添命으로 본관은 선산이다. 처의 외조부에 대한 기재사항은 해충에 의한 탈락으로 글자를 확인하기 어려우나 연관문서를 통해 알 수 있다.
호구문서에서는 보통 가족의 인적사항을 기재할 때 나이는 물론이고 생년간지도 기재한다. 그러나 본 문서에는 주호를 포함한 모든 가족의 생년간지가 누락되어 있는데, 문서의 발급연도와 나이를 통해 생년을 추정할 수 있다. 첫째 아들 충의 조위도는 22세이고, 생년은 신묘(1651)으로 추정된다. 둘째 아들 조위정은 18세이고, 생년은 을미(1655)으로 추정된다. 첫째 아들의 직역인 충의忠義衛를 뜻한다. 충의위는 조선시대 중앙군으로서 五衛의 忠佐衛에 소속되었던 양반 특수 兵種으로 공신 자손이 포함되었다.
사위 유학 최진희의 본관은 해주이고, 나이는 33세이며, 생년은 경진년(1640)으로 추정된다. 딸 유인 조씨는 28세이고, 생년은 을유년(1645)으로 짐작된다.
노비는 대체로 각각의 나이와 부모도 함께 기재하였다.
문서의 기재사항 끝에는 기유년(1669) 호구와 대조하여 발급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이 준호구에는 兼府使의 署押이 있고, 3개의 官印이 찍혀 있으며, 문서의 중앙에는 周挾無改印이 찍혀 있다.
본 문서는 가로로 4번, 세로로 8번 접어진 상태로 보관되었고, 접어진 상태에서 해충에 의한 탈락이 발생하여 문서의 곳곳에 구멍이 생겨 일부 글자는 확인이 어렵다. 또한, 오염도 군데군데 관찰된다.
주호의 거주지로 기록된 춘천부 동산외면 만의동리는 지금의 춘천시 동면 만천리 일대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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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 황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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