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1년 홍훤(洪藼) 준호구(準戶口)

ㆍ자료UCI: KNU+GWKSMC+KSM-XD.1681.4211-20170501.201600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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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춘천부(春川府)
수취 : 홍훤(洪藼)
· 작성지역 춘천부
· 작성시기 康熙二十年(1681)
· 형태사항 104.4 X 145.7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11 (적색, 정방형, 8.0*8.0, 春川府印)
1 (흑색, 장방형, 14.3*.5.4, 周挾無改印)
· 원소장처 춘천 남양홍씨
· 현소장처 춘천 남양홍씨

연결자료

안내정보

1681년(숙종 7) 춘천부(春川府)에서 통훈대부(通訓大夫) 전행함흥부판관(前行咸興府判官) 홍훤(洪藼)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홍훤신유(1621)생으로 당시 나이는 61세이고, 본관은 남양이다. 춘천부(春川府) 동산외면(東山外面) 만의동리(萬宜洞里)에서 처 경주이씨(慶州李氏)와 아들, 사위 윤적경(尹積慶) 내외와 손자 2명, 제수(弟嫂) 광주안씨(廣州安氏)안동권씨(安東權氏)여주민씨(驪州閔氏)광주안씨의 아들, 안동권씨의 아들 3명, 아우 홍근(洪菦) 내외와 그들의 아들 2명, 그리고 조카 조일환(趙日煥) 내외 등 18명의 가족과 함께 거주하였다.

상세정보

1681년(숙종 7) 春川府에서 신유년(1681)에 작성한 호구장적을 참고하여 通訓大夫 前行咸興府判官 洪藼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홍훤신유(1621)생으로 당시 나이는 61세이고, 본관은 남양이며, 春川府 東山外面 萬宜洞里 第一統 第四戶에서 살았다.
홍훤의 사조사항을 보면 부친은 從仕郞 洪振湖이고, 조부는 贈通政大夫 承政院左承旨 兼經筵參贊官 宣敎郞 洪琡이며, 증조부는 贈通訓大夫 弘文館直提學 知製敎 兼經筵侍講官 春秋館編修官 行通訓大夫 豊基郡守 安東鎭管兵馬同僉節制使 兼春秋館編修官 洪翼俊이다. 외조부는 通德郞 金添命으로 본관은 선산이다.
가족은 18명이 있는데, 처 淑人 李氏, 사위 尹積慶 내외와 손자 2명, 弟嫂 廣州安氏安東權氏驪州閔氏안동권씨의 아들 4명, 아우 洪菦 내외와 그들의 아들 2명, 그리고 조카 趙日煥 내외이다.
숙인 이씨무오(1618)생이고, 나이는 64세이며, 본관은 경주이다. 처의 사조를 보면 부친은 成均進士 李慶集이고, 조부는 通訓大夫 行豊儲倉奉事 李溧이며, 증조부는 嘉善大夫 吏曹參判 兼同知經筵事 世子右副賓客 五衛都摠府副摠管 李廷馨이다. 외조부는 宣務郞 南斗一로 본관은 의령이다.
홍훤 내외의 아들이 처음 기재되는데, 아들의 이름은 洪台鼎으로 冠名은 洪徵叙(洪周叙로 개명)이며, 나이는 18세이다. 홍징서홍훤의 넷째 동생 洪菦의 둘째 아들로 홍훤이 그 뒤를 이을 아들이 없어 양자로 삼은 것이다. 춘천남양홍씨 가문에는 홍훤홍징서를 호적에 입적시키는 것을 예조에 허가받는 내용의 立案이 전해진다. 이 입안은 1680년 12월에 작성된 것인데, 내용을 보면 홍훤홍징서를 후사로 삼기 위해 소지와 함사를 올리고 상대 집안인 홍근도 이 내용이 두 집안의 합의에 의한 것이라는 소지를 올리고 있다. 그리고 집안 어른인 홍일호를 증인으로 삼아 관아의 승인을 얻었다.
사위 윤적경경진(1640)생으로 당시 나이는 42세이고, 본관은 파평이다. 직역이 出身이라 기재되어 있어 윤적경은 무과나 잡과의 과거 시험에 합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연관문서에 의하면 윤적경宣略將軍의 품계를 받았으므로 무과에 합격한 것이다. 처는 孺人 洪氏임오(1642)생이며, 나이는 40세이다. 윤적경은 아들이 2명 있다. 첫째 아들은 이름이 尹萬一이었는데, 尹原一로 개명하였으며, 나이는 21세이다. 둘째 아들 尹時一은 15세이다.
홍훤에게는 4명의 아우가 있었다. 넷째 동생 洪菦을 제외한 洪蘊, 洪葕, 洪藎은 사망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홍온의 처는 광주안씨로 56세이다. 안씨의 아들 洪又賤이 문서에 처음으로 기재되었다. 관명은 洪倫叙이고, 나이는 18세이다. 홍윤서홍훤의 둘째 아우 홍연의 둘째 아들이다. 홍온이 후사 없이 죽자 홍온의 처 광주안씨에게 입양된 것으로 보인다. 홍징서와 비슷한 시기에 입양절차가 이루어졌을 것으로 짐작되나 입안 문서는 현존하지 않는다.
홍연의 처는 안동권씨로 나이는 50세이며, 4명의 아들을 두었으나 둘째 아들 홍윤서를 입양 보내 3명의 아들이 기재되어 있다. 첫째 아들 洪至賤은 관명이 洪彛叙이고, 나이가 21세이다. 둘째 아들 洪益賤은 16세이며, 넷째 아들 洪終賤은 12세이다.
홍신의 처 여주민씨정축(1637)생으로 나이가 45세이며, 자녀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넷째 아우 홍근병자(1636)생으로 나이가 46세이고, 처 全州李氏기묘(1639)생으로 나이가 43세이다. 홍근 내외는 2명의 아들을 두었으나 둘째 아들 홍징서홍훤에게 양자로 보냈다. 아들 洪箕叙는 21세이다. 홍기서의 경우 따로 기재하지 않았으나 1678년 준호구에서는 洪台相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었으므로 홍기서라는 이름은 관명으로 짐작된다.
한편 누이의 아들로 보이는 조카 趙爲冕 내외도 함께 살았는데, 조위면趙日煥으로 개명하였다. 조일환무자(1648)생으로 나이가 34세이고, 본관은 평양이다. 처 전주이씨는 사망하였으며, 자녀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이 준호구의 기재양식을 다른 준호구들과 비교할 때 가장 확연한 차이는 노비를 기록한 부분에서 보인다. 예를 들어 이 문서에는 주호 홍훤과 그의 사조, 처의 인적사항 및 사조를 기록한 후 솔노비질, 외거노비질, 도망노비를 기재하였다. 그리고 아들 홍징서와 사위 윤적경 내외 및 그의 자식을 기록한 후 솔노비질, 외거노비질, 도망노비를 기재하였다. 그 다음 다시 사망한 아우 洪蘊과 그의 처를 기록한 후 솔노비질, 외거노비질, 도망노비를 기재하였다. 이처럼 주호, 사위, 아우, 조카 등을 기재하면서 각각의 소유 노비를 구분하였기 때문에 마치 재산상속문서인 분재기와 흡사한 양상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적이다.
또 다른 특이사항은 첫째 제수 광주안씨, 둘째 제수 안동권씨 그리고 사위 윤적경 내외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에 대해서는 나이는 밝히고 있지만 생년간지는 기재하지 않은 점이다.
준호구에는 府使의 서압이 있고, 11개의 官印이 찍혀 있다. 문서의 말미에 이 준호구는 무오년(1678) 호구와 대조하여 발급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문서의 좌측 중앙에는 周挾無改印을 날인하였다.
이 문서는 춘천 남양홍씨 가문에서 세로로 4번, 가로로 10번 접어서 보관하여 전해졌는데, 접혀진 모서리를 중심으로 약간의 오염과 부분적 탈락이 있다.
홍훤과 관련한 연관문서로 호구문서 외에 24건의 교령류 문서가 있다. 연관문서를 통해 홍훤1659년 진사에 합격하여 39세 때부터 벼슬살이를 시작한 것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종8품 平市署奉事부터 시작하여 종7품 宗簿寺直長, 정6품 戶曹佐郎, 종5품 工曹正郎, 정5품 刑曹正郎을 거치면서 약 20년간의 관직생활을 하였고, 관직에서 물러난 1675년 전후에 춘천으로 옮겨와 생활하였다.
주호의 거주지로 기록된 춘천부 동산외면 만의동리는 지금의 춘천시 동면 만천리 일대로 현재까지 후손들이 세거하고 있으며 종가를 포함하여 5~6호가 남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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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 황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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