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3년 홍주서(洪周叙) 준호구(準戶口)

ㆍ자료UCI: KNU+GWKSMC+KSM-XD.1693.4211-20170501.2016000158
URL
복사
복사하기
·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춘천부(春川府)
수취 : 홍주서(洪周叙)
· 작성지역 춘천부
· 작성시기 康熙三十二年(1693)
· 형태사항 110.4 X 59.2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3 (적색, 정방형, 7.0*7.0, 春川府印)
1 (흑색, 장방형, 13.0*.4.2, 周挾無改印)
· 원소장처 춘천 남양홍씨
· 현소장처 춘천 남양홍씨

연결자료

안내정보

1693년(숙종 19) 춘천부(春川府)에서 유학(幼學) 홍주서(洪周叙)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이 문서는 홍주서가 주호로 작성된 호구문서 중 가장 이른 시기의 문서이다.
홍주서갑진(1664)생으로 당시 나이는 30세이고, 본관은 남양이다. 홍주서춘천부 동산외면(東山外面) 만법동리(萬法洞里)에서 처 기계유씨(杞溪俞氏)와 함께 살았다.

상세정보

1693년(숙종 19) 春川府에서 계유년(1693)에 작성한 호구장적을 참고하여 幼學 洪周叙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이 문서는 홍주서가 주호로 작성된 호구문서 중 가장 이른 시기의 문서이다.
문서에 따르면 홍주서갑진(1664)생으로 당시 나이는 30세이고, 본관은 남양이다. 이 문서에는 개명한 내용이 확인되지 않으나 1690년에 부친 洪藼이 발급받은 준호구에는 홍주서의 이름이 洪徵叙로 기재되어 있어 개명한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홍주서춘천부 東山外面 萬法洞里 第三統 第二戶에서 처 俞氏와 함께 살았다. 이 문서에는 統首도 기재되어 있는데, 3통의 통수는 金貞國이다.
홍주서의 사조사항을 보면 부친은 通訓大夫 行刑曹正郞 洪藼이고, 생부는 通德郞 洪菦이며, 조부는 從仕郞 洪振湖이다. 증조부는 贈通政大夫 承政院左承旨 兼經筵參贊官 洪琡이고, 외조부는 嘉善大夫 行龍驤衛副護軍 李慶集으로 본관은 경주이다.
유씨홍주서와 동갑이고, 본관은 기계이다. 기계유씨의 부친은 折衝將軍 僉知中樞府事 俞樸이고, 조부는 贈嘉善大夫 兵曹參判 兼同知義禁府事 行通訓大夫 麻田郡守 長湍鎭管兵馬同僉節制使 俞希曾이며, 증조부는 贈通政大夫 承政院左承旨 兼經筵參贊官 俞大儀이다. 외조부는 通政大夫 行鍾城都護府使 鄭就道로 본관은 연일이다.
춘천남양홍씨 가문에는 이 문서보다 이른 시기인 1690년홍주서의 부친 홍훤이 발급받은 준호구도 전해진다. 이 문서에는 홍주서와 그의 처 유씨만이 기재되어 있지만 1690년 홍훤이 발급받은 준호구에는 홍훤의 처 淑人 李氏와 아들 洪徵叙(洪周叙로 개명) 내외, 사위 尹積慶 내외, 외손자 尹原一 내외와 외손자 2명 등이 함께 기재되어 있다. 이 준호구에 홍훤이 죽어 代子를 했다는 내용이 기재되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홍주서는 부친 홍훤이 사망하기 전에 분호한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남양홍씨 족보에 따르면 부친 홍훤1693년에 사망하였다.
노비와 관련된 부분은 가족구성에 관한 기재가 끝난 후에 각각의 率奴婢秩, 外方奴婢秩, 逃亡奴婢秩을 순차적으로 기재하였다.
이 준호구에는 府使의 서압이 있고, 3개의 官印이 찍혀 있으며, 문서의 말미에는 이 준호구가 경오년(1690) 호구와 대조하여 발급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문서의 중앙 하단에는 周挾改印을 찍었으며, 그 아래에는 黃素耈, 鄭次益을 적고, 그 위에 관인을 찍었다. 황소구, 정차익은 준호구를 작성한 담당자를 의미한다. 준호구는 이전에 보고한 호구단자를 토대로 작성한 호구장적에 기초하여 작성하는데, 불러주는 자와 쓰는 자 두 명이 역할을 구분하여 작성하였다. 이를 각각 이라 하였다.
문서의 보존상태는 양호하다. 이 문서는 춘천 남양홍씨 가문에서 세로로 4번, 가로로 4번 접어서 보관하여 전해졌으며, 접혀진 모서리를 중심으로 약간의 오염이 있다.
홍주서와 관련해서는 이 문서 외에도 8통의 호구류 문서가 전해지는데, 이 문서들에 의하면 홍주서의 직역이 계속해서 유학으로 기재된 점으로 미루어 과거급제는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후사가 없어 숙부 洪葕의 차남인 洪攸叙의 아들 洪昌震을 입양하여 대를 이었다. 또한, 1711년에서 1726년 사이의 호구문서들에 의하면 홍주서는 이 시기 일시적으로 漢城府에서 생활한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권내현,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 역사비평사, 2015
문현주, 조선후기 漢城府에서의 戶口單子·準戶口 작성 과정에 관한 再考, 古文書硏究42, 한국고문서학회, 2013
유재춘, 강원도내 戶口 古文書의 현황과 특이사례에 대한 검토, 古文書硏究39, 한국고문서학회, 2011
고민정, 南陽洪氏 益山君派의 春川移居와 定着, 朝鮮時代史學報46, 조선시대사학회, 2008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고문서연구센터, 春川 南陽洪氏家 古文書·古書, 강원대학교중앙박물관, 2007
손병규, 호적, 휴머니스트, 2006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황은영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