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1년 홍이팔(洪履八) 준호구(準戶口)

ㆍ자료UCI: KNU+GWKSMC+KSM-XD.1801.4211-20170501.201600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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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춘천부(春川府)
수취 : 홍이팔(洪履八)
· 작성지역 춘천부
· 작성시기 嘉慶六年(1801)
· 형태사항 133.1 X 69.1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1 (적색, 정방형, 7.0*7.0, 春川府印)
1 (흑색, 장방형, 12.5*4.1, 周挾改印)
· 원소장처 춘천 남양홍씨
· 현소장처 춘천 남양홍씨

연결자료

안내정보

1801년(순조 1) 춘천부(春川府)에서 통덕랑(通德郞) 홍이팔(洪履八)에게 발급해 준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주호 홍이팔임신(1752)생으로 당시 나이는 50세이고, 본관은 남양이다. 동산외면(東山外面) 만법동리(萬法洞里)에서 처 공인(恭人) 송씨(宋氏), 아우 홍이칠(洪履七), 제수(弟嫂) 전주이씨(全州李氏)와 함께 거주하였다.

상세정보

1801년(순조 1) 春川府에서 신유년(1801)에 작성한 호구장적을 참고하여 通德郞 洪履八에게 발급해 준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주호 홍이팔임신(1752)생으로 당시 나이는 50세이고, 본관은 남양이다. 東山外面 萬法洞里에서 처 恭人 宋氏, 아우 洪履七 내외와 함께 살았다. 統數 및 統首를 기재할 공간은 비워두었으나 쓰지 않았다.
홍이팔의 사조사항을 보면 부친은 通政大夫 行承政院同副承旨 兼經筵參贊官 春秋館修撰官 洪彦喆이고, 조부는 折衝將軍 僉知中樞府事 洪昌震이며, 증조부는 통덕랑 洪周叙이다. 외조부는 통덕랑 李東膺으로 본관은 전주이다.
주호의 처 공인 송씨정해(1767)생으로 나이는 35세이고, 본관은 여산이다. 사조사항을 보면 부친은 學生 宋應發이고, 조부는 학생 宋之復, 증조부는 折衝將軍 行龍驤衛副護軍 宋元俌이다. 외조부는 학생 慶日觀으로 본관은 청주이다.
아우 홍이칠병술(1766)생으로 나이가 36세이고, 제수 全州李氏병신(1776)생으로 나이는 26세이다. 이 문서에는 기재되지 않았지만 연관문서에 따르면 홍이칠 내외의 슬하에는 무오(1798)생인 아들 洪箕錫이 있다. 홍기석1801년에 4세로 당시 함께 거주하였겠지만 미혼의 어린 자녀를 호적에 올리지 않는 관습의 일반화로 인해 당시에는 漏口로 존재한 것이라 추정된다.
노비는 率奴婢秩, 外居秩, 逃亡秩 순으로 구분하여 기재하고 있다.
문서의 기재사항 끝에는 무오년(1798) 호구와 대조하여 발급한 것임을 밝혔으며, 문서의 좌측상단에는 署押을 찍고 그 아래에는 官印과 周挾改印을 겹쳐 찍었다.
본 문서의 보존상태는 양호하며 가로로 4번, 세로로 10번 접은 흔적이 있다.
홍이팔과 관련한 연관문서로 호구류 문서 10통과 관첩 2건이 현전하는데, 이 관첩에 따르면 홍이팔1777년에는 將仕郞, 1778년에는 從仕郞에 임명되었다.
주호의 거주지로 기록된 춘천부 동산외면 만법동리는 지금의 춘천시 동면 만천리 일대로 현재까지 후손들이 세거하고 있으며 종가를 포함하여 5~6호가 남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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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 황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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