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4년 한용눌(韓用訥) 준호구(準戶口)

ㆍ자료UCI: KNU+GWKSMC+KSM-XD.1804.4211-20170501.2016000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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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춘천부(春川府)
수취 : 한용눌(韓用訥)
· 작성지역 춘천부
· 작성시기 嘉慶九年(1804)
· 형태사항 101.0 X 58.5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1 (적색, 정방형, 7.0*7.0, 春川府印)
1 (흑색, 장방형, 13.0*4.2, 周挾改印)
· 원소장처 춘천 남양홍씨
· 현소장처 춘천 남양홍씨

연결자료

안내정보

1804년(순조 4) 춘천부(春川府)에서 유학(幼學) 한용눌(韓用訥)에게 발급해 준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주호 한용눌갑진(1784)생으로 당시 나이는 21세이고, 본관은 청주이며, 개명 전 이름은 한용의(韓用誼)이다. 한용눌동산외면(東山外面) 만법리(萬法里)에서 처 남양홍씨(南陽洪氏)와 함께 거주하였다.

상세정보

1804년(순조 4) 갑자년春川府에서 작성한 호구장적을 참고하여 幼學 韓用訥에게 발급해 준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주호 한용눌갑진(1784)생으로 당시 나이는 21세이고, 본관은 청주이다. 문서에는 한용눌이 개명한 사실을 밝히고 있는데, 개명 전 이름은 韓用誼이다. 춘천부 東山外面 萬法里 第十統 四戶에서 처 洪氏와 함께 거주하였다.
한용눌의 사조사항을 보면 부친은 成均進士 韓時裕이고, 조부는 通訓大夫 行順興都護府使 安東鎭管兵馬同僉節制使 韓光載이며, 증조부는 贈崇政大夫 議政府左贊成 兼判義禁府事 世孫貳師 五衛都摠府都摠管 行通訓大夫 工曹佐郞 韓師德이다. 외조부는 성균진사 洪秉喆로 본관은 남양이다.
주호의 처 홍씨계묘(1783)생으로 나이는 22세이고, 본관은 남양이다. 처의 부친은 通德郞 洪履八이고, 조부는 通政大夫 行承政院同副承旨 兼經筵參贊官 春秋館修撰官 洪彦喆이며, 증조부는 折衝將軍 僉知中樞府事 洪昌震이다. 외조부는 嘉善大夫 戶曹參判 兼同知義禁府事 五衛都摠府副摠管 李重馥으로 본관은 전주이다.
노비에 대한 내용은 행을 바꾸어 이름과 나이, 생년간지뿐만 아니라 부모에 대해서도 기재하였다.
문서의 기재사항 끝에는 신유년(1801) 호구와 대조하여 발급한 것임을 밝혔다. 문서의 좌측 상단에는 行府使의 署押이 있고, 하단에는 官印과 周挾改印을 겹쳐 찍었다.
본 문서의 보존상태는 양호한 편으로 가로로 3번, 세로로 9번 접어진 상태로 보관된 흔적이 있고, 일부 옅은 오염도 관찰된다.
이 문서는 주호 한용눌의 본관인 청주한씨 가문에서 전해지지 않고 현재 춘천남양홍씨 가문에서 소장하고 있다. 이는 한용눌의 거주지가 처가인 남양홍씨 가문이 세거하던 춘천부 동산외면 만법리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춘천남양홍씨 가문에서는 같은 해인 1804년에 장인 홍이팔이 발급받은 준호구도 현전하는데, 홍이팔의 거주지는 第十統 三戶로 統數가 같기 때문에 인근에 거주하였음을 알 수 있다.
주호의 거주지로 기록된 춘천부 동산외면 만법리는 지금의 춘천시 동면 만천리 일대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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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 황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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