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7년 한용눌(韓用訥) 준호구(準戶口)

ㆍ자료UCI: KNU+GWKSMC+KSM-XD.1807.4211-20170501.201600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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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춘천부(春川府)
수취 : 한용눌(韓用訥)
· 작성지역 춘천부
· 작성시기 丁卯(1807)
· 형태사항 118.5 X 63.2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1 (적색, 정방형, 7.0*7.0, 春川府印)
1 (흑색, 장방형, 13.2*4.0, 周挾改印)
· 원소장처 춘천 남양홍씨
· 현소장처 춘천 남양홍씨

연결자료

안내정보

이 문서는 1807년(순조 7) 춘천부(春川府)에서 유학(幼學) 한용눌(韓用訥)에게 발급해 준 준호구이다.
본 문서에 기재된 발급연도인 가경 11년(嘉慶十一年)1806년이나, 정묘년1807년인 점, 한용눌의 나이가 24세인 점 등으로 미루어 가경 11년가경 12년(嘉慶十二年)을 잘못 기재한 것으로 보인다.
주호 한용눌갑진(1784)생으로 당시 나이는 24세이고, 본관은 청주이다. 동산외면(東山外面) 만법동리(萬法洞里)에서 처 남양홍씨(南陽洪氏)와 함께 거주하였다.

상세정보

이 문서는 정묘년1807년(순조 7)春川府에서 작성한 호구장적을 참고하여 幼學 韓用訥에게 발급해 준 준호구이다.
본 문서에 기재된 발급연도인 嘉慶十一年1806년이나 정묘년1807년인 점, 한용눌의 나이가 24세인 점 등으로 미루어 가경 11년嘉慶十二年을 잘못 기재한 것으로 보인다.
문서에 따르면 주호 한용눌갑진(1784)생으로 당시 나이는 24세이고, 본관은 청주이다. 東山外面 萬法洞里 第十統 第二戶에서 처 洪氏와 함께 거주하였다.
한용눌의 사조사항을 보면 부친은 成均進士 韓時裕이고, 조부는 通訓大夫 行順興都護府使 安東鎭管兵馬同僉節制使 韓光載이며, 증조부는 贈崇政大夫 議政府左贊成 兼判義禁府事 世孫貳師 五衛都摠府都摠管 行通訓大夫 工曹佐郞 韓師德이다. 외조부는 成均進士 洪秉喆로 본관은 남양이다.
주호의 처 홍씨계묘(1783)생으로 나이는 25세이고, 본관은 남양이다. 처의 사조사항을 보면 부친은 通德郞 洪履八이고, 조부는 通政大夫 行承政院同副承旨 兼經筵參贊官 春秋館修撰官 洪彦喆이며, 증조부는 折衝將軍 僉知中樞府事 洪昌震이다. 외조부는 嘉善大夫 戶曹參判 兼同知義禁府事 五衛都摠府副摠管 李重馥으로 본관은 전주이다.
노비에 대한 내용은 행을 바꾸어 노비의 이름과 생년간지, 부모를 기재하고 있다.
문서의 기재사항 끝에는 갑자년(1804) 호구와 대조하여 발급한 것임을 밝혔다. 문서의 좌측 상단에는 행부사의 署押이 있고, 문서의 좌측 하단에는 官印과 周挾改印을 겹쳐 찍었다.
본 문서는 가로로 4번, 세로로 6번 접어진 상태로 보관된 흔적이 있고, 문서가 접어진 상태에서 약간의 오염이 발생하였다. 또한 문서가 접어진 상태에서 문서의 일부에 해충에 의한 탈락이 발생하여 곳곳에 작은 구멍이 있다.
이 문서는 청주한씨 가문에서 전해지지 않고 현재 춘천남양홍씨 가문에서 소장하고 있다. 이는 한용눌의 거주지가 처가인 남양홍씨 가문이 세거하던 춘천부 동산외면 만법리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주호의 거주지로 기록된 춘천부 동산외면 만법동리는 지금의 춘천시 동면 만천리 일대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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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규, 호적, 휴머니스트, 2006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황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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