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3년(순조 13) 계유년에 春川府에서 작성한 호구장적을 참고하여 幼學 李榮會에게 발급해 준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주호 이영회는 갑신(1764)생으로 당시 나이는 50세이고, 본관은 전주이다. 東山外萬法里 第八統 第四戶에서 처 洪氏, 첫째 아들 유학 李象中, 둘째 아들 李乙祿과 함께 거주하였다.
이영회의 사조사항을 보면 부친은 學生 李仁保이고, 조부는 通訓大夫 行世子侍講院弼善 兼春秋館編修官 李心海이며, 증조부는 通德郞 李鉉相이다. 외조부는 학생 崔守儉으로 본관은 완산이다.
주호의 처 홍씨는 무인(1758)생으로 나이는 56세이고, 본관은 남양이다. 남양홍씨의 부친은 학생 洪彦赫이고, 조부는 折衝將軍 僉知中樞府事 洪昌震이며, 증조부는 通德郞 洪周叙이다. 외조부는 학생 姜泰世로 본관은 진주이다.
이영회와 남양홍씨 사이에는 아들이 2명 있었는데, 첫째 아들 이상중은 정미(1787)생으로 27세이고, 둘째 아들 이을록은 을묘(1795)생으로 19세이다.
노비사항은 행을 바꾸어 노비의 이름과 나이, 부모에 대한 사항을 기재하였다.
문서의 기재사항 끝에는 경오년(1810) 호구와 대조하여 발급한 것임을 밝혔으며, 그 아래에 官印과 周挾改印을 겹쳐 찍었다. 署押은 문서의 좌측 상단과 하단 2곳에 찍혀 있으나 서압의 주체는 기재하지 않았다.
본 문서는 가로로 3번, 세로로 7번 접어진 상태로 문서가 접힌 부분에 오염이 발생하였다. 문서의 우측 하단에는 작은 구멍이 있다.
이 문서는 주호 이영회의 본관인 전주이씨 가문에서 전해지지 않고, 현재 춘천의 남양홍씨 가문에서 소장하고 있다. 이는 이영회의 거주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처가인 남양홍씨 가문이 세거하던 춘천부 동산외만법리에 살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춘천의 남양홍씨 가문에서 같은 해인 1813년에 장인 홍언혁의 조카인 洪履八이 발급받은 준호구도 현전하는데, 홍이팔의 거주지는 第八統 第二戶로 이영회와 統數가 같다.
주호의 거주지로 기록된 춘천부 동산외만법리는 지금의 춘천시 동면 만천리 일대로 현재도 남양홍씨 종손이 거주하고 있다.
참고문헌
권내현,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 역사비평사, 2015
문현주, 조선후기 漢城府에서의 戶口單子·準戶口 작성 과정에 관한 再考, 古文書硏究42, 한국고문서학회, 2013
유재춘, 강원도내 戶口 古文書의 현황과 특이사례에 대한 검토, 古文書硏究39, 한국고문서학회, 2011
고민정, 南陽洪氏 益山君派의 春川移居와 定着, 朝鮮時代史學報46, 조선시대사학회, 2008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고문서연구센터, 春川 南陽洪氏家 古文書·古書, 강원대학교중앙박물관, 2007
손병규, 호적, 휴머니스트, 2006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황은영